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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데이터주의] 코스모스(COSMOS) 3부 :: 패턴, 혜성, 핼리, 훅, 뉴턴

2016. 5. 16. 21:34

 

코스모스 3부 : 지식이 두려움을 정복할 때

 

벌써 3화를 다루게 되었다.

앞으로 10화가 더 남아있지만 차근차근 짚어보도록 하겠다.

 

앞서 코스모스에 대한 설명은 했으니 바로 시작해보자.

 

 

 

패턴 인식

 

 

지구에 덩그러니 놓여진 사람은 약한 존재였지만 지식을 겸비했다.

 

그리고 사람은 뛰어난 눈과 뇌를 통해 패턴을 만들어냈다.

같은 밤하늘을 보더라도 저마다 다른 별자리를 완성했고, 이는 과거 하늘의 메시지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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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은 우리가 스마트폰을 보며 하루를 보내듯 하늘을 보며 보냈다.

 

별의 움직임과 생명의 계절적 순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았고,

하늘의 메시지가 우리를 위한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런 혜성의 등장에 조상들은 두려웠다.

혜성이 안정적인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에 대한 신의 메시지라고 여겼기때문이다.

 

재앙을 의미하는 단어 'Disaster(디제스터)'는 '불길한 별'을 의미하는 그리스 어에서 왔다.

 

 

 

 

재앙의 의미만 달랐을 뿐 혜성의 출현은 인류 공통된 불길한 징조였다.

 

혜성은 마사이족에선 기근, 남쪽의 졸루족에겐 전쟁, 서쪽에선 질병을 의미했다.

이외에도 천연두나 지도자의 죽음 등 다양하게 해석했다.

 

 

 

 

 

중국은 그 와중에 기원전 1400년전부터 혜성을 관찰하며 기록했고,

꼬리가 셋이면 국가의 재난, 꼬리가 넷이면 전염병으로 분류했다.

 

이처럼 사람은 모든 현상에서 패턴을 찾아 의미를 부여해왔다.

우리의 존재가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여겼기때문이다.

 

 

 

 

혜성

 

 

 

좌측에 서있는 인물은 태양을 둘러싼 오르트 구름을 발견한 얀 오르트(Jan Hendrik Oort)다.

물론 이미지 속 인물은 대역이다.

 

그는 은하 내에서의 우리 위치를 찾아낸 인물로,

직접 보진 못해도 과학적 검증을 통해 오늘날 우리 은하의 모습을 그려낸 인물이다.

 

 

 

 

'재앙의 아이콘'이라는 혜성이 저 앞에 목성을 지나고 있다.

 

혜성은 궤도를 돌며 움직일 때, 행성의 중력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때문에 오르트 구름을 벗어나 다른 성간 우주로 멀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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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이 태양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얼어붙었던 성분들이 기체로 녹아 나오게 된다.

 

즉, 소모적인 활동을 하게되는데 모든 것을 소진하면 소행성이 된다.

 

 

 

 

 

움짤로 보니 얼마 못 가서 없어질 것만 같다.

 

이처럼 녹아서 부서지고 떨어져나가며 길게 기체를 흩뿌린다.

때론 행성과 충돌하여 명을 다 하기도 한다.

 

 

 

 

에드먼드 핼리 Edmond Halley

 

 

인류가 4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혜성은 약 10만번 출현했을 거라 한다.

 

바꿔말하면, 그 때마다 인류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 듯, 혜성이 나타나자 곧 런던에는 전염병과 대화재가 일어났다.

 

하지만 어린 애드먼드 핼리는 혜성이 두렵지 않았다.

요즘말로 금수저였던 그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호기심을 풀어나갔다.

 

 

 

 

그리고 핼리는 20살에 옥스포드 대학을 중퇴하고, 적도 밑에 위치한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섬의 기후가 변화무쌍한지 몰랐고, 관측이 어려워 1년이나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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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핼리는 별자리 지도를 완성했다.

 

핼리의 남반구 별자리 표 덕분에 상인과 탐험가들이 별자리를 이용해 항해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정보 교류의 성지였던 런던 왕립학회에서 큰 이목을 끌었다.

 

이는 영국 왕립학교의 로버트 훅의 관심도 받고, 핼리와 인연이 닿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로버트 훅 Robert Hooke

 

 

현재 로버트 훅의 초상화가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당대 주변인들의 묘사만이 남았는데, 등이 굽고 못 생겼으며 많이 야위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외형과 달리 파티에서 인기있는 창의적인 학자였다.

 

자신이 발명한 복합 현미경을 통해 코르크 조각에서 세포를 최초로 발견했다.

또한 망원경을 계량하여 천체를 관측했고, 이를 보고 그린 그림은 현재 사진과 비교해도 놀라울 정도의 정확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용수철을 이용해 탄성의 법칙을 찾았으며, 오늘날 훅의 법칙으로 불린다.

이 외에도 대마초에 관한 실험과 공기 펌프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연구를 했다.

 

 

이러한 훅은 대화재로 손실된 도시를 복구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렌과 만나게 된다.

 

 

 

크리스토퍼 렌 Cristopher James Wren

 

 

영국의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은 당시 성행했던 커피 하우스에 앉아 핼리와 훅과 함께 차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눴다.

우리는 카페에서 일상에 대해 얘기하지만, 이 셋은 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수수께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렌은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을 재건한 건축가로, 왕실관계 건설총감의 지위를 가졌던 인물이다.

 

 

 

 

이 보다 80년 전,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임을 밝힌바 있었다.

 

그리고 케플러에 따르면 태양과 가까워 질 때 행성의 움직임이 빨라지는데,

그 이유에 대한 물음이 카페에 앉은 이들의 대화 주제가 되었다.

 

 

이에 크리스토퍼 렌은 먼저 해법을 찾는 이에게 돈이 아닌 책을 걸었다.

이때다 싶어 달려든 훅은 자신이 이미 연구를 끝냈다며 증명하겠다고 약속했다.

핼리는 호기심을 풀 수 있어서 반가웠지만, 훅은 끝내 몇 달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핼리는 계속되는 훅의 변명에 질렸고,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이작 뉴턴을 찾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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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뉴턴은 태어날 때 이미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그가 3살 때 떠나 11살되던 해에 재혼하여 새로운 가족과 함께 돌아왔다.

뉴턴은 양아버지를 경멸했으며, 이러한 가정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방법이 자연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이후 뉴턴은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갔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도 없다보니 내내 공부만 거듭했다.

 

자연현상을 수학으로 풀이하는 것을 좋아했고, 연금술과 성경에 대한 연구했으나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신비주의 과학자로 지냈는데, 이렇게 지내는 데에는 훅의 영향이 컸다.

빛의 스펙트럼에 대한 연구를, 훅이 자신의 연구 결과라며 뉴턴이 이를 훔쳤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얼탱이가 없던 뉴턴은 세상을 등지고 신비주의로 지냈고, 그 기간은 무려 13년에 달했다.

 

 

 

 

 

이런 그에게 핼리가 찾아왔다.

 

핼리는 앞서 궁금했던 행성의 운동에 관한 물음을 던지며, 훅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마침 뉴턴은 훅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으므로 대화에 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뉴턴은 이미 5년전에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끝냈다고 했다.

이를 살펴본 핼리는 세상에 알리기로 하고 책으로 출판하길 권했다.

 

 

 

 

하지만 왕립학회의 재정난으로 출판이 어려웠고, 재고도 처리하기 어려운 사정이었다.

직원 월급마저 책으로 줄정도였고, 핼리 또한 돈 대신 책으로 월급을 받았다.

 

그래도 핼리는 뉴턴의 연구물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자신의 사비도 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출판 직전, 훅은 또 다시 이 연구 업적이 자신의 것이라며 우겼다.

 

하지만 제대로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그는 뉴턴의 험담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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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그 책이 바로 프린키피아다.

 

과학에 큰 획을 그은 총 세권 분량의 책으로, 수학적 법칙을 통해 모든 운동원리를 설명했다.

 

이 책에는 뉴턴이 발명한 미적분학, 우주 여행을 위한 이론적 바탕 등도 포함되었다.

 

 

 

 

 

뉴턴은 한 예로 대포를 떠올렸다.

포탄의 속도만 충분하다면, 포탄이 지구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모든 것을 뒤바꿨다.

 

 

 

인공위성, 달 착륙, 로켓 발사, 화성 탐사 등 천문 물리학 분야의 큰 발전을 가져왔다.

이는 지구에 있는 인류에게 미지의 바깥세상인 우주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기도 했다.

 

 

 

 

핼리의 업적

 

 

프린키피아가 출판된 후, 핼리는 왕의 명을 받아 영국 해군을 돕기위한 과학 조사 목적으로 세 차례의 항해를 떠났다.

 

이때다 싶은 핼리는 지구의 자기장 지도를 최초로 작성했다.

 

 

 

 

그리고 핼리는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할까봐 발명품을 직접 실험했다.

사업가로서 그는 잠수종을 개발했고, 해난 구조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한, 탁월풍을 표시하기 위한 기상도도 발명했고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인류 통계학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는데,

직접 파리 시내를 걸음으로 쟀고 런던과 프랑스의 인구밀도 등을 직접 파악했다.

 

 

 

 

 

말하다보니 핼리 업적이 유재석 미담 급인데,

우리에게 태양계의 규모를 알려준 것도 핼리다.

 

핼리가 사망하고 27년 후, 왕립학회의 명으로 항해사인 제임스 쿡(James Cook)은 타히티 섬으로 첫 항해를 떠났다.

그리고 금성일식 때, 핼리 측정법을 적용하여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1억 5천만 광년 떨어져있음을 밝혔다.

 

 

 

 

헬리는 모든 별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수 세기에 걸친 관측기록을 수집하여 밝혀내기도 했다.

 

우리의 태양도 은하를 중심으로 돌고 있고, 다른 별들도 함께 뱅글뱅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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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그리고 잊고 있던 혜성으로 돌아오면, 핼리는 혜성 목격담을 수집했다.

 

그는 1472년에서 1698년 사이에 유럽에서 기록된 혜성관측자료를 모두 찾아냈다.

구글링도 없던 시절, 책과 지성만으로 자료를 찾아내 분석을 시작했다.

 

이내 패턴을 찾았고, 그는 어떤 과학자도 시도할 수 없던 '예언'의 영역에 도전했다.

바로, 특정한 때 특정한 방향으로 혜성이 지날 것이라 단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신이 예언한 혜성을 못보고 일찍 사망했지만,

그의 예언대로 예언한 날 혜성은 찾아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핼리 혜성이 그것이다.

불길한 징조였던 혜성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 정도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핼리혜성은 1986년이며, 76년을 주기로 지구에 접근한다.

즉, 다음 접근시기는 2061년 여름이다.

 

 

 

 

훅의 초상화

 

 

 

훅이 사망한 뒤, 그를 이어 뉴턴은 왕립학교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증거는 없으나, 훅의 초상화를 그가 불태웠다는 설이 있다.

 

 

 

 

 

마지막 예언

 

 

 

 

천문학자들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만으로 수십억 년 후의 미래를 예측한다.

이는 우리 은하와 이웃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가 합쳐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만약 인류가 지구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전할 거라고 한다.

실제로 항성 간 거리가 굉장히 멀어서, 직접적인 충돌가능성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마치며

 

우리가 지구를 아끼고 후손에게 물려준다면,

별 다른 영향이 없는 한, 사상 최대 우주쇼를 인류가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끝.

 

 

 

참고자료

 

위키 / 코스모스 3부